실직을 처음 경험했을 때, 나라는 존재가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매일 아침 7시에 울리던 알람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고,
출근을 위해 준비하던 루틴이 사라지자 하루가 마치 텅 빈 집처럼 느껴졌다.
가장 무서웠던 건, 시간이 흘러가는 걸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 똑같은 날처럼 느껴졌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감정은 정리되지 않았고,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때, 아주 우연한 계기로 나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냥 지금 이 마음을 한번 써보자.”
그렇게 시작된 한 줄의 기록은 내 감정을 구체화시켰고,
나를 무너뜨릴 뻔했던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잡는 작은 나침반이 되었다.
이 글은 실직이라는 현실 속에서 내가 매일 써온 ‘정신을 지키기 위한 일기법’에 관한 기록이다.
거창하지 않지만 효과 있었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실제로 나를 회복시켜준 방법이었다.
실직 후 삶이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이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쓰는 일상’이 주는 심리 회복의 힘
일기의 시작 – 감정이 폭발할 때는 ‘정확히 써보기’
내가 처음 일기를 쓴 날은 실직 후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느 순간 폭발하듯 나타났다.
감정이 유난히 들쑥날쑥했고, 평소 하지 않던 행동들도 나왔다.
갑자기 혼자서 음식을 과하게 먹거나,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구쳤다.
무언가가 나를 안에서부터 흔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주 조용한 저녁,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이 상태를 그냥 써보자.' 그렇게 시작된 것이 내 첫 일기였다.
그날 적은 첫 문장은 이랬다.
“지금 너무 복잡하다. 화도 나고, 슬프고, 멍하고, 외롭다.”
처음에는 문장이 정돈되지 않았고, 감정이 엉켜 있었다.
하지만 계속 쓰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 지금 가장 억울한 건 어떤 부분일까?
- 정말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이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을 써 내려가다 보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천천히 구체적인 언어가 되었다.
단순한 감정의 배출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이해’하려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일기를 쓴다는 건 단지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혼란을 조용히 정리할 수 있는, 내면과의 안전한 대화 공간이라는 걸.
매일 아침, ‘감정 스캔 일기’ 쓰기
나는 실직 이후 우울감이 올라오는 시간을 관찰해보니,
대부분 새벽이었다.
“오늘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공허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며 간단하게 ‘감정 스캔’을 일기로 썼다.
양식은 아주 단순했다.
- 오늘 아침 나의 기분: (예) 무기력함 70%, 초조함 20%, 기대감 10%
- 내 몸의 느낌: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함
- 오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 “오늘은 그냥 걷기만 해도 괜찮아.”
이렇게 적으면, 생각보다 복잡했던 내 상태가 눈에 보이게 정리되었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글로 쓰면 형태를 갖는다.
그리고 형태를 갖는 순간, 감정은 조절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 감정을 없애야 해’가 아니라,
‘이 감정을 함께 살아내자’는 자세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저녁엔 ‘작은 성취 일기’로 자존감 채우기
실직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나는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었다.
그래서 저녁에는 그날 내가 해낸 아주 사소한 일들을 나열하는 일기를 썼다.
- 이불을 개었다
- 냉장고에 남은 반찬을 다 먹었다
- 15분 산책을 했다
- 온라인 강의 1강을 들었다
사소하지만 분명히 내가 움직인 결과였다.
이것을 매일 3~5개씩 기록했다.
그랬더니 “나 요즘 아무것도 안 해”라는 말이 입에서 사라졌다.
실제보다 나를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성취를 적어두는 이 일기법은 내 자존감을 하루하루 조금씩 회복시켰고,
‘나도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믿음을 다시 갖게 해주었다.
일기와 함께한 ‘자기 대화법’
일기장 한 켠에는 항상 이 문장을 써 넣었다.
“내가 오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처음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문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오늘은 여기까지 잘했어.”
-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알고 있어. 정말 애썼어.”
- “쉬어도 괜찮아. 다시 걸어가면 되니까.”
이 문장은 나를 위한 ‘위로이자 선언’이었다.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말을,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이 한 줄의 문장이, 일기의 마무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줬고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다음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해줬다.
종이 위의 대화가 내 정신을 다시 세웠다
실직이라는 상황은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나를 시험하는 가장 강력한 순간이기도 했다.
일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나를 설명할 도구’를 잃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매일 일기를 쓰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일로만 정의되는 사람인가?”
“내가 해왔던 삶의 방식 외에 다른 길은 없는가?”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적어나가는 과정은,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동시에 다시 사랑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 글,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글,
그 글들이 내 정신을 단단하게 해주었다.
일기를 쓰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
돈이 드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어느 상담보다도 직접적이었고,
어떤 조언보다도 진심이었다.
왜냐하면, 그 일기는 ‘내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실직이라는 터널 속에 있다면,
꼭 한 번 일기를 써보길 바란다.
형식도, 문장력도, 분량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당신의 마음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를
당신 스스로 알아채는 것이다.
종이 위의 한 문장이, 당신을 다시 중심으로 돌려줄 수 있다.
오늘 하루를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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